장보고 중국 유적지를 다녀와서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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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장보고 중국 유적지를 다녀와서쓴 기록

친구의 권유로 얼떨결에 해상왕 장보고 중국 유적지 답사에 신청을 하면서 혹시 친구들은 다 탈락되고 나 혼자 선발되면 어찌지 하던 우려가 행운으로 드러났을 떄 반가움보다는 함께 가지 못하는 친구들,동료 선생님들께 미안함이 앞섰다.명단을 보니 군산에는 나 혼자 선발되었다.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여행준비를 대충하였다.드디어 출발하는 날,아침 일찍 남편이 장항역까지 승용차로 태워다 주어서 용산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3시간을 달려 평택역에 도착해서 터미널로 갔더니 여기저기서 여행용 가방을 끌고 모여드는 선생님들이 눈에 띄었다.드디어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애 도착했다.

전국에서 운좋게 뽑히신 분들이 하나둘 모여 무려 69명의 닶하단은 명찰과 안내 책자를 받아들고 조별로 눈인사도 나누고 또 기다렸다.출국 절차를 마치고 타이타닉을 생각나게 하는 대룡훼리호에 올라 방 배정을 받았는데 양평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아주 야무지게 생긴 서수원 선생님과 5일 동안 한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아무리 커다란 배지만 흔들림과 소음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권 교수님의 열띤 강의는 지속되고,보따리 장사의 인내심은 한계를 드러내고,늦은 밤 푸근하고 따뜻한 인상의 같은 조 선생님들과 친교의 인사와 이야기가 무르익으며 여행 첫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중국이다.배낭을 어깨에 걸머지며 마음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배를 나섰다.한국에서 듣기로는 중국이 40도를 오가는 불볕더위라고 들었는데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뺨에 스쳤다.아마 중국이 워낙 넓으니 땅마다 다른가 보다.이정표에 쓰인 한자를 보니 중국임이 실감났다.오늘부터 산둥성도 우리나라의 반절이상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중국에서는 잠시면 도착한다는 거리가 2시간 남짓이고,조금 간다고 하면 3~4시간이고,좀 가야 된다고 하면 5~6시간이라한다.

연태에 도착해서 처음 중국음식을 먹었다.둥근 판에 음식을 놓고 돌려가며 먹는 뷔페식이었는데 어쩜 그렇게도 다 기름에 볶았는지 벌써부터 초고추장 생각이 간절했다.식사 후 각자 버스에 나누어 타고 봉래로 이동하였다.멀ㄹ리서 바라본 등주수성은 이방인에게 가슴 설레게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조각처럼 아기자기한 등주수성은 이방인에게 가슴 설레게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조각처럼 아기자기한 등주수성은 이방인에게 가슴 설레게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조각처럼 아기자기한 등주수성 여러 곳을 가이드의 설명을 빠뜨릴까 조마조마하며 열심히 따라다니며 들었다.

등주수성은 명조 때부터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완벽한 해상방어 체계를 형성하였으며 당시 산둥연해에 만여 명의 군사를 주둔시켰고 등주에만 3000여 명의 군사가 주둔했다고 한다.지금은 관광지로 변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간다고 한다.다음 찾아간 곳은 고선박물관,이곳에서 배의 모든 것을 본 것 같았다.고선박물관을 보고 버스를 타고 치박으로 이동하였는데 도로 양옆의 넓은 평야에 뺴곡히 심어진 옥수수와 백양나무는 눈이 모자랄 정도로 넓었으며,또한 백양나무는 방풍효과도 가진다고 하였다.또 봄이면 날아오는 황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공기도 신선하게 유지한다.그렇게 자란 나무는 언젠가는 목재로 떌감으로 사용된다고 한다.